스님들이 드디어 장군죽비를 높이 들었다. 이명박 정부의 참회를 촉구하고, 퇴행되어 가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불교계 단체에서는 그동안 개별적으로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며 성명을 발표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1천5백명에 가까운 스님들이 시국선언을 다시금 천명하게 된 것은 개별적인 입장표명을 넘어 통일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절박한 상황인식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조계종 스님 시국선언 준비모임이 오늘(6월 15일) 오후 1시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1447명의 스님들이 서명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시국선언 발표에 앞서 전 은해사 주지 법타 스님이 여는말로 문을 열었다.
법타 스님은 “지금 대한민국은 개인이, 국민이, 국가가 안녕치 못하고 평화롭지 못한 세상”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모자라지만 잘해줄거라 기대했는데 그 기대를 저버렸기에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스님들이 수행정진해야 하는 하안거 기간임에도 이렇게 대중 앞에 서야 하는 현실이 지금의 우리나라 시국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개탄한 법타 스님은 “대통령과 정부가 더 나은 정책을 펼치도록 장군죽비로 경책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법타 스님은 또 “정부는 경제 문제를 제외하고라도 운하를 4대강살리기로 둔갑시키는 위선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며 “남북관계에서는 최악의 위기상황을 자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시국선언문은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장 현각 스님이 낭독했다. 조계종 1447명의 스님들은 시국선언문을 통해 “위선과 오만 그리고 독단과 거짓에 능숙한 현 정부를 택했던 우리의 어리석음이 결국 2년도 채 되지 않아 참담한 현실을 불러오고 있다”며 “시대를 살아가는 수행자로서 한없는 자괴감과 부끄러움에 얼굴조차 가눌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스님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전국적인 추모는 어떠한 경우에도 민주주의의 숭고한 정신과 가치가 훼손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일방적인 자연공원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운 스님들은 “정부는 사유권 침해와 전통사찰 보존구역에 대한 정책과 관리 및 지원에 대한 방침도 세우지 않고 있다”며 “이는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자기모순과 당착에 빠져 민족정기와 신성한 기도처마저 훼손하고 있는 정부의 문화인식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스님들은 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수사 사과 및 검찰 등 사정기관의 공정성 확보와 중립화를 위한 제도 개혁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과 집회, 언론의 자유 등 기본권 보장 △용산참사의 책임있는 해결과 비정규직 노동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 △4대강 살리기 및 각종 문화재 파괴행위 중단 △종교성과 문화적 가치 배제한 자연공원법 개악 중지 △대북강경노선을 철회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확보에 진력할 것 등을 촉구했다.
시국선언문 발표가 끝난 뒤 스님들은 정부를 경책하는 상징적 의미로 죽비를 조계사 대웅전 불단에 올리는 봉정식을 봉행하고 조계사 앞에서 운하백지화를 촉구하며 천막농성을 하는 관계자들을 방문, 격려했다.
이날 시국선언문에는 동국대 정각원장 법타 스님, 봉국사 주지 효림 스님,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장 현각 스님,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대표 법안 스님,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 대표 진오 스님 등 1447명의 조계종 스님들이 이름을 올렸다.